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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성자
홍선생교육
등록일
2013-12-03

성인들의 그림 그리기 효과

조선일보 | 맛있는교육

2013.12.03 10:02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는 마음의 작용, 즉 무의식적 갈등이나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림은 시각적으로 상징화된 ‘비언어적 언어’로써,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심리적 갈등과 소망, 생각이나 태도 등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그림을 보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심리적 고통을 치유해주는 작업이 가능해진다.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이중섭화백의 그림이나, 신체적, 심리적 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 권총 자살하기 직전에 그렸다는 고흐의 검푸른 하늘 위로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을 보게 되면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들의 심리적 고통과 고독이 짙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림이 마음의 작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전달해 준다는데 있다.

그림이 치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주지의 사실이다.

“모든 미술은 명상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그림을 그리다보면 흥분되었던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해지며 집중력도 증가된다.

미술치료는 이미 전문적인 심리치료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지만, 전문적인 미술치료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해 내면에 쌓여있던 정서적 고통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덜어내게 되면 혼란스러웠던 감정이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며, 빈자리에 긍정적인 감정이 채워질 수 있게 된다.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으며, 그리는 활동 자체를 즐기면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한다.

또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용기, 자기-통제감이 생기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세계적인 미술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전시회를 본 적이 있다.

생전에 그녀는 "나에게 예술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며 내가 경험한 상처와 증오, 연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고, "예술은 나에게 치유이자 구원"이라고 고백한 바 있듯이, 조각, 설치미술, 드로잉 등 그녀의 다양한 작품들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교사와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한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증오, 세상을 일찍 떠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예술 작업을 통해 표출되고 승화되고 치유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작품은 마치 어린아이가 종이 노트를 수십장 찢어서 그 위에 검은색, 붉은 색 볼펜으로 마구 낙서한 듯 보이는 것을 미술관 큰 방의 한 벽면에 가지런하게 모두 걸어둔 작품이었다. 한 장 한 장의 작은 그림은 무의미하고 매우 혼란스러워보였지만,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바라보니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통일된 인상을 주었다.

그녀가 손바느질 작업을 많이 했듯이, 아무 형식 없이 선을 반복적으로 종이 위에 자유롭게 그리는 과정에서 기형적인 부모-자녀관계에서 찢기고 부서졌던 마음 조각들이 하나하나 이어져서 마음의 재통합이 이루어지고 자기 통제력을 회복한 것처럼 보여서, 그림 그리는 것의 강력한 치유적인 힘을 다시금 경이롭게 느끼게 되었다.

벌써 입추도 지났다. 올 가을에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며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신민섭(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